
"버티면 된다"는 말을 철칙처럼 믿고 살아온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화물차 일을 시작하면서 2년만 버티면 정리된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고, 실제로 그 약속 하나로 하루하루를 넘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버팀이, 앞으로 나아가는 버팀인가, 아니면 그냥 제자리를 지키는 버팀인가.
2년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이 흔들릴 때
화물차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저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익으로 대출을 갚고, 생활을 안정시키고, 2년 후에는 숨통이 트일 거라는 계획이었습니다. 몸은 고됐지만 수입이 받쳐주는 동안에는 버틸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외부 변수가 끼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물동량 감소, 운임 하락. 이른바 화물 운송 시장의 수급 불균형(물동량 대비 차량 과잉 공급 상태)이 심화되면서 같은 방식으로 일해도 결과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수급 불균형이란 시장에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상태로, 운임이 자연스럽게 하락 압력을 받는 구조를 말합니다. 제가 무언가 잘못한 게 아니라, 판이 바뀐 것이었습니다.
그 시점부터 솔직히 흔들렸습니다.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이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버팀이란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구조 자체가 달라지는 국면에서는 단순한 버팀이 해결책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국토교통부 화물운송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영업용 화물차 등록 대수는 꾸준히 증가한 반면, 전체 물동량 증가세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출처: 국토교통부). 제가 겪은 수입 하락이 단순히 개인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이 수치를 보고 나서야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버팀의 한계, 어디서 선을 그어야 하는가
버티는 삶이 필요하다는 데는 저도 동의합니다. 문제는 그 버팀이 어떤 종류인지입니다. 제가 경험하면서 느낀 건, 버팀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는 점입니다.
- 성장형 버팀: 현재의 고통이 미래의 성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의 인내
- 소진형 버팀: 구조적 변화 없이 시간만 흘러가는 상태에서의 무작정 버티기
여기서 번아웃(Burnout)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번아웃이란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소진으로 인해 심리적, 신체적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번아웃을 공식적인 직업 관련 현상으로 분류했습니다. 문제는 번아웃 상태에서 "버텨야 한다"는 강박이 더해지면, 회복의 기회 자체를 스스로 차단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소진형 버팀을 하고 있을 때는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냅니다. 피로가 풀리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도 의욕보다 무기력이 먼저 올라오는 느낌. 그 시점에서 "좀 더 버티면 된다"고 자신을 다독이는 건, 솔직히 용기가 아니라 회피에 가깝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심리학에서는 이 상태를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고 부릅니다. 학습된 무기력이란 반복되는 실패나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노출되면서, 변화를 시도하려는 의지 자체가 사라지는 심리적 상태를 말합니다. 버팀이 장기화될수록 이 함정에 빠질 위험이 높아집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직업 만족도와 지속 의지는 외적 보상뿐 아니라 '직무 효능감', 즉 자신의 일이 의미 있다는 주관적 확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출처: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수입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저는 그 효능감도 함께 흔들렸고, 그게 버팀을 더 힘들게 만든 진짜 이유였다고 생각합니다.
방향 전환과 회복탄력성, 버팀의 다음 단계
그렇다면 버팀을 멈춰야 한다는 말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버팀의 방식을 바꿔야 할 시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회복탄력성이란 역경이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심리적 능력을 의미합니다. 흥미로운 건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의 특징이 "무조건 버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방향을 재조정하는 능력"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느낀 변화의 시작도 그 지점이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버티는 게 맞는 걸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던 그 순간이, 사실은 변화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당시엔 나약해진 것 같아 불편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의심이 저를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만든 계기였습니다.
지금 버팀과 방향 전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요.
- 지금 버티는 이 상황이 6개월 후에도 나아질 가능성이 있는가?
- 나는 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데, 환경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닌가?
- 지금 느끼는 피로가 일시적 소진인가, 아니면 구조적 문제에서 오는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보면, 지금 필요한 것이 더 센 버팀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인지를 조금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을 때, 답이 생각보다 빨리 나왔습니다.
버팀은 분명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방향 없는 버팀은 소진일 뿐이고, 방향 있는 버팀은 성장입니다. 지금 어떤 버팀을 하고 있는지 한 번쯤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것, 그게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버텨온 시간은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버팀이 앞을 향하고 있는지, 이제는 제대로 확인할 때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직업 상담이나 심리 상담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www.m-letter.or.kr/happy-contents/?bmode=view&idx=151864099